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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티카'에 해당되는 글 19건
2007/07/17 01:24

1988 요네하라 마리는 동베를린행 비행기에서 '도쿄에 사는 김씨'라는 재일 조선인을 만났다.

 

" 나라는 님의 나라와 운명이 같아 보이는군요"라고 중얼거렸다.

"그건 아니지. 결코 아니야"

신사는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의 온화한 표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무서울 정도였다. 흥분한 김씨 말은 도대체 알아들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본인도 제대로 표현을 못하는 것에 부아가 나는 모양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헝크러진 실타래처럼 한꺼번에 터져 나오느라 언어중추가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용은 명확하기 그지없는 터라 나는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독일은 점령받을 원인을 스스로 만들었고, 따라서 분단된 원인에 대한 책임의 일단을 지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 조국은 아닙니다."

...

한반도는 -소군에게 점령당할 원인을 스스로 만들지 않았다(원인을 만든 것은 일본이다).

따라서 분단원인에 책임을 필요가 없다.

 

신사인지라 김씨 입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민족이 분단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일본이다.

독일이 받고 있는 벌을 일본이 피할 있었던 것은 한국과 북조선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암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
요네하라 마리, 마녀의 한다스 중에서

 

 

나는 2 일본 여행 중에 '마녀의 한다스' 읽었다.

일본에서 힘겹게 투쟁을 하고 있는 '조선학교'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인지

일본인 작가의 성찰이 왠지 씁쓸했다. 그녀의 반성으로 재일 조선인의 고통이 덜어질 만무하기 때문이다.

 

도쿄의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교장 선생님에게 아직도 민족인가? 낡은 아닌가?라는 다소 어려운(?) 질문이 던져졌다. 우문에 현답이 이어졌다.


우리는 다른 곳으로 이민간 사람들과 다르다. 그들은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할아버지, 아버지는 곳에 끌려 오셨다, 원해서 이곳에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본학교에 다니며, 일본인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일본에게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언어로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권리가 있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느끼는 이러한 권리를 위해 그들은 매일 힘겹게 싸워야 하는 것이다.

명쾌해 보이던 문제가 지금은 굉장히 복잡하게 느껴진다
.
프로는 사태를 단순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사기꾼일수록 쉽게 단정 짓고, 해결되었음을 주장한다
.

민족주의의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

20
가까이 일본생활을 하고 있는 '이모' 어떤 답답함에 대해서 토로했다
.
일본에서 역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
오히려 금전적 보상을 지불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

아이들은 이상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
한국에 대한 폭압적인 식민지배에 대해서 반성할 계기조차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이번 일본여행은 나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
많은 양심적인 일본인들, 반성하는 지식인들의 존재감이 생각보다 미미하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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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Icon 무새 | 2007/07/17 08:09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녀의 성찰로 고통이 덜어질리 만무하다"는...좀 근본주의적인 냄새가...^^;
미미하다고 좌절하지 말고 그 '미미한' 성찰하는 일본인들과의 연대를 통해
고통을 덜기 위해 노력하는게 더 중요하겠죠.
upani | 2007/07/17 12: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근데 당시 감상에 푹 빠져 있었고.
이모가 일본에서 느낀 좌절도 전해들었고. 뭐 그런 것 때문일꺼야.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무새 말이 맞지.
실제로 에다가와나 우토로에도 양심적인 일본인의 도움이 많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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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4 21:48

훌라걸스에 대한 리뷰에는 대조적인 단어들이 동시에 등장해야 한다.
60년대의 일본 탄광마을은 지저분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된다.
노-사, 노-노는 갈등적이면서도 화해를 이루기도 한다.
채산성이 떨어지는 탄광을 폐쇄하는 비극이라는 현실 속에서 그녀들은 코믹을 연출한다.

영화를 보는 중에는 60년대 말의 시대적 분위기가 무겁게 느껴졌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에는 왠지 모르게 유쾌한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비극이 주를 이루는 현실이지만 기억은 미화되는 것과 비슷하게...

단연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열어가는 여성들이다.
탄광노동자들은 새로운 온천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배신행위로 간주하지만 결국 그녀들을 지지하게 된다.


엔딩크레딧 직전에는 이후 탄광 폐쇄 이후 4400명이 해고되었다는 자막이 올라간다.
아마 60년대 후반의 탄광 폐쇄의 과정은 훨씬 더 폭력적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훌라걸스의 탄광촌은 관광지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 자영업의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90년대 초반까지 '1억 총중류'라는 신화가 가능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
강원랜드와 하이원은 어땠을까? 탄광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훌라걸스는 어떤 전형적인 코드들이 재미를 더해준다.

주인공들이 스승의 춤에 꽂혀 열정을 갖게 되고 성장한다는 무협의 코드이다.
이는 '바람의 전설'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이들이 단체로 연습하며 나은 공연을 만들어 갈때 느끼는 희열은 스윙걸스를 생각나게 한다.
함께 몸을 움직이며 공연을 만들어간다는 것...
호흡이 맞아가는 것을 보며 느끼는 희열...

나는 한국영화를 꽤나 좋아하는데,  최근 괜찮은 영화를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영화들을 좀 만들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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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5 16:03

카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곳은 남미가 아닐까? 기독교 탄생지 예루살렘 입장에서 보면 대서양 건너편이고, God께서 창조한 세상의 범주에 있지 않은 곳에서 카톨릭 신자가 많다니!

당근 기독교의 보편성이 승인된 것이 아니라 God을 믿는 사람들의 탐욕과 야만이 낳은 결과이다. 중남미 지역에 관한 역사를 조금만 들추어보면 정복자들의 야만성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선교라는 미명하에 정복과 살육이 진행되었으니 기독교를 강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구한 독자적인 전통과 사상을 갖고 있던 잉카, 마야, 아즈텍의 후손들이 어찌하여 대다수가 카톨릭 신자로 남게 된 것일까?하는 의문은 남아 있었다.


자신들을 살해하고 수탈한 정복자들의 종교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문은 최근 읽고 있는 우석균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를 통해서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티오(삼촌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숭배는 식민시대에 인디오들이 광산에 투입되면서부터 생겨났다. 당시 스페인인들은 인디오들을 갱도에 몰아넣고 6일 동안 나오지 못하게 했다. 인디오들은 오직 미사가 있는 일요일에만 햇빛을 볼 수가 있었다.. 가톨릭 포교를 정복의 명분으로 삼았고 원주민의 개종을 책임지겠다는 구실로 대규모 노동력을 확보한 스페인이니만큼 일부러라도 미사에 원주민을 참석시켜야 했을 것이다, 일주일에 단 하루밖에 햇빛을 보지 못하는 그 가혹한 노동 조건 속에서 인디오들에게 최소한의 위안을 준 것이 바로 티오 숭배였다.

석균,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中에서


또한 성모를 자신들의 대지의 여신인 파차마마로 재해석했다고 하니 정복자들의 종교를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조적으로 이슬람교의 경우 10세기 전후에 급속히 팽창하였는데, 많은 학자들이 이슬람교의 '관용'이 오히려 팽창에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불교도 정복전쟁을 벌였다는 얘기는 못들은 것 같으니 기독교 전파 과정만 심히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세계에서 이슬람 교도가 가장 많은 나라인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도 정복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승인을 통해서 이슬람교가 크게 전파될 수 있었다고 한다.


제목 얘기를 하자면...

어제 씨네큐브에서 본 바벨에서 모로코 여행중인 미국인 관광객이 던진 중동인들의 마을은 위험하다는 헛소리가 생각난 탓이다.

모로코보다는 뉴욕이 훨씬 더 위험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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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8 14:57

굿모닝, 나잇 (Buongiorno, Notte)

1월의 첫째 주말 脫서울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간만의 폭설로 무산되고 말았다.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의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 머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후륜구동은 빙판에서 빙글빙글더 위험한 것을 생각하면 잘 한 결정이었다. 한 겨울 서민의 놀이터는 아무래도 뜨듯한 방구석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건너뛰기 아쉬운 것은 극장인데, 일요일에는 필름포럼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10명이 넘는 관객과 호흡하고 싶었지만, 주말 저녁 극장 안에는 8~9가량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 닫으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주말 저녁 굿모닝, 나잇은 조심스러웠지만 참으로 잘 한 선택이었다.

몇 해 전에 한 신문기사에서 78년 있었던 이탈리아 수상 납치 살해 사건을 영화화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영화를 마주하고서야 떠올랐는데, 영화의 분위기나 색조는 70년대 말을 우울하게 그려주고 있다. 붉은 여단의 멤버들의 수염이나 헤어스타일, 여주인공의 복장이나 분위기가 꽤나 사실적으로 보인다. 사실 나는 당시 유럽 청년들의 패션에 대해 알지 못 할 뿐더러 경험한 적도 없지만 동시대적으로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78


영화는 초반부에 78년의 시작을 알려주는 카운트다운 당시의 TV방송을 통해 보여 준다. 78년은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지만 이탈리아 기민당 당수가 납치 살해된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68년 유럽에서 일었던 혁명적인 분위기가 이미 과거의 기억으로 넘어가고 있었던 시점이기도 하다. 많은 타협이 이루어진 것 같지만 결국 부르주아는 승리했고, ‘붉은 여단(brigate rosse)’의 이상은 대중운동과 결합할 수 없었다.


정치권에게 버림 받은 수상의 목숨


납치된 알도 모로 수상은 정부가 자신이 죽기를 바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살해되어 주검이 공개되어야 반대 세력들에 대해 성공적인 역공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자세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붉은 여단은 수상의 목숨을 볼모로 요구안을 낸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수상에게 정치권과 교황청 등에 구원의 편지를 쓰도록 한다. 결국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수상의 예견대로 붉은 여단에 의한 사형이 집행된다.

영화에서는 여주인공의 시점이 중요한데, 그녀는 수상의 납치를 뉴스에서 보면서 뛸 듯이 기뻐한다. 그러나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는 그들의 행동에 대한 혼란함과 두 달간 감금해두었던 수상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사형집행을 반대하게 된다. 이러한 붉은 여단의 행동에는 68년 이후 대중과 유리되어 진행되었단 좌파운동의 한 극단을 보여준다. 결코 테러가 대중운동과 결합될 수 없다는 것은 레닌도 강하게 주장했던 것이다.

TV에서는 이들의 행동을 강도 높게 비난하고, 여론이 좋지 않음을 계속 보여준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디어를 비판하는 이들이 TV를 통해 드러나는 반응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것이다.


아파트, 과격 테러 분자는 당신의 이웃


도서관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청년은 붉은 여단의 맹목성을 토로하고, 그녀에게 더 자신을 꾸며 볼 것과 개성을 살려볼 것을 주장한다. 물론 이상과 동지가 있는 그녀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요구이다.

일반적으로 한적한 교외로 끌려가는 여느 납치 사건과 다르게 알도 모로는 로마 시내의 중산층 아파트에 감금되었다. 당신 옆집에 극악 무도한 납치범이 함께 사는 셈이고, 그녀는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바람난 남편을 갖고 있다.

다시 생각하면 좌익 분자는 사실 평범한 이웃이며, 독극물을 먹고 자란 괴물이 아니다.



여주인공 키아라는 꿈을 꾼다. 꿈에서 수상은 자상한 아저씨인데, 마지막 꿈에서는 외투를 조이며 조용히 거리로 나간다.


그러나 우리의 꿈과 현실은 언제나 다르다. 그것이 아름답고 이상적일수록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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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2 10:25

1부를 보지 못하고 2, 3부를 보게 되었다.


시리아나를 보며 영상매체의 파워를 다시금 실감했다. 굳나잇앤굳럭, 시리아나, 콘스탄트 가드너, 칠레전투, 에스코바의 자살골, 좋은 쿠르드 나쁜 쿠르드 최근에 본 극영화이던 다큐이던 어쨌든 그것은 가상이다. 그런데 감상 이후에 잘 구성된 현실로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예컨데 내가 겪은 캄보디아는 킬링필드의 이미지 뿐이다. (어제 롤랑 조페의 킬링 필드를 봤다. 뉴욕타임즈 기자의 경험을 토대로 했는데 믿을 수 없어 관련 사건을 좀 더 찾아봐야겠다.)

주로 고발하는 형태로 각색된 영화들이지만 실제 영상과 인터뷰만으로 채워진 칠레전투가 보다 상상력을 자극했다.


피노체트 시절의 칠레에서는 태평양 상공에서 사람을 내던지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할 요량이었겠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피노체트는 3명의 장군들과 TV에 출현해 아옌데를 몰아내고 정권을 접수하겠다고 매우 비장하게 발표 한다. 딴에는 구국의 결단인 셈이다. 공군 전투기가 대통령궁 상공을 비행하며 위협하고 있다. 외국으로 망명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제의를 하지만 아옌데는 거절한다. 명령이 떨어지고 대통령궁은 자국의 전투기에 의해 폭격된다. 대통령 경호부대를 내보내고 결사항전을 하던 아옌데는 결국 살해당하고 만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은 그렇게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칠레 반동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뒤늦게 본 것이기는 하나 칠레전투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부르주아들이 공장을 폐쇄하고 사회주의 정권에 맞서자 노동자들은 스스로 생산자 조합을 조직해 나간다. 토지와 공장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민중권력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이 펼쳐진다. 모든 영역에서 토론이 펼쳐지고 TV에서도 민중연합과 기민당의 논쟁이 벌어진다. 자주적으로 관리되는 공장과 농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은 출생부터 글로벌 했다고 해야 하나? 민중권력의 상상력이 넘치던 칠레는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아래 살해당하고 말았다. 소련은 뭐하고 있었을까?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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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Icon trendon | 2006/05/23 18: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음 흥미로운 평입니다.
upani | 2006/05/25 15:0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영화 보는 내내 만감이 교차하는지라 리뷰쓰기가 쉽지 않았어요. 할말도 많고, 잘 못쓰겠기도 하고...
그새 또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았습니다.
리뷰를 써볼 생각이지만 좀 실망스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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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2 10:13

94년 미국 월드컵, 기대를 받고 북쪽으로 날아간 콜럼비아의 에스코바는 실수로 넣은 자살골 때문에 살해당하고 만다. 에스코바의 자살골이 콜럼비아인들에게 안긴 실망은 매우 큰 것이었고, 그는 광적인 축구팬에 의해 살해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마약 카르텔의 범죄 조직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콜럼비아의 승리에 베팅을 한 범죄 조직에 의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나라는 따사로운 햇살과 카리브 연안의 푸른 바다보다는 마약과 납치로 유명하다. 치안이 불안하고 테러가 많은 나라 1순위로 항상 꼽히니 그것이 누구의 시선이든 위험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영국에 머물던 콤럼비아 유학생은 메데인에는 돈을 목적으로 하는 납치가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에스코바의 자살골이라는 다큐를 보면, 콜럼비아의 축구 클럽은 상당수가 이런 범죄조직에 의해 운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승리 골을 넣은 선수는 소감을 밝히며 감옥에 있는 보스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인간승리의 드라마가 유난히 많다. 그리고 고된 훈련을 감내하고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스포츠 스타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트레드밀에서 30분 달리고서 뻗어버리는 나를 돌이켜 볼 때 그들의 노력은 가히 초인적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스포츠 선수는 보는 이에게도 감동과 기쁨을 준다. 따라서 함께 즐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스포츠를 즐기며 지나친 상업성과 집단적인 광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요즘 미디어를 보면 길을 가는 프랑스인에게 태클이나 거는 유치한 광고가 흘러나오고, 4년 전 붉은악마 마케팅 성공이 부러웠던 한 이통사는 공식 응원가에 붉은 T셔츠의 물량 공세를 해대니 ‘공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이다. 요즘의 미디어는 모두 밥 굶고 월드컵 승리만을 기원할 태세로 보인다.

거기에 조폭과 다를 바 없는 거대 기업들이 월드컵 마케팅으로 엄청난 자본을 쏟아 붓고 이미지 세탁을 하고 있으니 ‘에스코바의 자살골’이 떠오르는 것은 억지스러운 추측만은 아닌 것 같다.

이럴 때 내가 스포츠 관람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감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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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6 16:19
스타라서 출연을 거절당한 조지 클루니가 13키로를 찌워서 출연시켜달라고 찾아 갔단다. 클루니는 다빈치 코드의 랭던 박사 역이 참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다.

그가 나오는 영화는 대개 밋밋했다. 콜린우드, 오 형제여~, 컨페션, 참을 수 없는 사랑 등등.(굳나잇앤굳럭은 초반 30분 이후 정신없이 잠든 관계로...) 약간은 코믹했던 그의 캐릭터들과 달리 시리아나의 CIA요원은 매우 진지했다.

그만큼 시리아나는 진지한 영화다.
추악한 자본을 상징하는 록펠러와 교차 편집되는 코넥스라는 석유기업, 미국과 단절하고 자국의 부흥을 꿈꾸는 왕자, 유럽의 휴양지에서 오일달러를 펑펑 써대는 아랍의 왕족, 국익을 명분으로 국제 분쟁에 개입하고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CIA, 비참한 현실에 자살 폭탄 테러범이 되는 소년...

이들은 각자 자식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반복되는 아랍 지역의 비극으로 얽혀있다.

결국 영화는 두가지 극단적인 폭력으로 마무리 된다.

2001년 9월 이집트인 지식인 출신 모하메드 아타는 분노를 가득 싣고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를 몰고 돌진했다. '시리아나'의 파키스탄 이주 노동자 소년은 미사일을 실은 작은 보트를 몰고 대형 선박에 돌진한다.

그리고 독자 노선을 걷고자 하는 아랍의 왕자는 CIA의 미사일 요격으로 가족과 함께 사망하고 만다. 이는 마치 게임처럼 수행된다.

엔딩크레딧과 숙연해지는 장내 분위기...

(한 경제 기사에 작년 고유가에 힘입어 순이익 1위 기업이 액슨모빌이란다. 이 회사의 전신은 사악한 자본가의 상징 록펠러가 만든 회사스탠다드 오일이다. 그런데 시리아나의 한계 또한 여기에 있다. 견실한 기업윤리를 가지고 에너지 개발에 착수한다고 이 비극의 악순환은 해결되지 않는다. 시리아나는 자본주의 체계까지 문제를 밀고나가지 못한다. 부패한 기업과 이와 결탁한 권력에 지나치게 비중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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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아는 만큼 보인다 | 2006/05/21 14:04 | DEL
세계는 지금 미국이라는 거대 강국의 지배권 아래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평화 유지라는 목적으로 세계 각국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전략적인 목적 이외에도 많은 자국..
BlogIcon trendon | 2006/05/21 14:05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가치있는 영화.
BlogIcon upani | 2006/05/22 10: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네... 트랙백 글은 잘 읽었습니다. 영내 극장이라면 부대에서 영화를 볼 수 있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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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4 18:42
그제 중앙시네마에서 싸움의 기술을 봤다. 윤식씨와 재희도 인사차 들러서 운 좋게 두 주인공을 볼 수 있었다. 재미와 내용면에서 예상에 딱 들어맞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아이들의 싸움에 대한 판타지가 가득하고, 욕망이 단순하게 표출 해결된다. 유쾌한 청소년만화 혹은 무협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관람 중에 두 영화의 두 장면이 연상되는데,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의 마지막 혈투(의 코믹버전인 느낌)와 킬빌 Vol.2에서 우마 서먼이 수련하는 모습이다. 학원 무협 활극이라고나 할까?

마지막에 윤식씨가 멕시코 칸쿤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비키니를 입은 백인 여성의 뽀뽀를 받는 장면은 감독의 욕구가 표출된 듯 한데 내겐 매우 어색해 보였다.

물론 영화의 매력은 무표정한 윤식씨의 압도적인 연기, 누구도 대신하기 힘든 역할이 아닐까?

사발
선배가 회사에서 황우석 사건이 영화화된다면 주인공은 ‘딱’ 백윤식씨라고 의견이 모아졌다는데, 듣자마자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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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4 22:33
안데르센의 동화를 모티브로 했다더라.
깜짝깜짝 놀래키는 식의 공포는 아니라하더라.

아니 왠걸. 기괴한 장면으로 놀래키는 것을 빼면 여름마다 저녁 가족 시간대에 납량특집으로 하는 쇼프로로 손색이 없겠던걸...

분홍신이 상징하는 허영과 욕망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기대했건만, 대강 김혜수의 애인의 대사처럼 치정 이상의 격한 감정은 묻어있지 않더라.

전체적인 줄거리는 로버트 드니로와 다코타 패닝의 숨바꼭질을 빌어왔다. 그리고 김혜수와 딸의 관계는 폰, 분홍신에 얽힌 한맺힌 과거는 인형사, 도시공간의 음침함은 4인용식탁, 막을 수 없는 죽음의 고리는 링을 그리고 마지막 사건의 전말을 풀어가는 것은 장화홍련을 생각나게 했다.

난 공포영화의 팬이 아닌데... 대강 내가 아는 영화들로 짜깁기가 가능하다. 동반했던 이의 말로는 불이 깜빡깜빡하는 장면은 싸이코를 생각나게 한단다.

이쯤에서 작년에 보았던 알포인트가 생각났다. 다시 보고 싶다.
알포인트를 보고 생각나는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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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4 22:11
"내가 왜 그런 바보같은 책을 썼는지 알아?"

"왜야?"

"그럼 네가 그걸 읽을테고 내가 널 찾아가서 물어볼 수 있으니까"
대체 어디있었던 거야?"

"내가 올줄 알았던 거야?"

"난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내가 생각했던건 내가 그걸 쓰면 널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


9년 만에 다시 찾아 온 비포 선셋의 대화내용이다.

미국청년이 유럽 여행 중에 하룻밤을 같이 보낸 연락처도 모른 채 헤어진 프랑스 여자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게다.

헤어지며 6개월 후에 비엔나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불발로 그치고, 9년이 흐른 뒤 출판 기념 행사차 들른 파리에서 그녀와 재회한다. 물론 그들은 유명세를 탄 주인공의 책 때문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어제 우연히 케이블에서 "세렌디피티"를 봤다. 3년 전 신촌의 한 허름한 비디오방에서 봤는데,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작년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시대의 사랑"을 꺼내들고, 영화에서 케이트 베켄세일이 가방에서 꺼내 자기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었던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각자의 애인을 위해 선물을 고르던 중에 한벌 남은 장갑을 동시에 집으려다 만난 조나단과 사라는 서로에게 빠져버린다. 운명적인 사랑을 강하게 믿고 있던 사라는 남자의 연락처를 5달러에 적으라하고, 자신의 연락처를 "콜레라시대의 사랑"에 적고 운명이라면 서로에게 전달될 것이고 다시 만날 것이라 한다.

5달러는 가판에 거스름돈으로... 그 책은 헌책방에 팔리고 7년 후에 서로의 손에 들리게 된다. 운명적 사랑?

어제 경마장에 갔었다. 대략 7000원가량 적자. 첫판에 10배를 맞고 좋아했는데 그 뒤로는 별로 소득이 좋지 않았다.

거기서 본 재미난 문구 "의지는 운명도 비켜간다"
말이 꼬여있기는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승리하겠다는 결의를 담은 플랑이었다.

운명이 맺어 주는 사랑은 없다. "서로"가 간절히 원하면 만나게 되어있다. 조나단이 열심히 책방을 돌아다니며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들춰보지 않았다면 그의 약혼녀가 결혼 선물로 사라의 연락처가 적힌 그 책을 선물하지 못했을 것이다.

에던 호크도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다시 줄리 델피를 만날 수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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