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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에 해당되는 글 10건
2007/01/08 15:45

연이은 포스팅들은 2006년 2학기 모 수업에서 내가 제기 했던 토론 내용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글은 무단 복제할 수 가 없었고,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내꺼만 이렇게 휴지통에 불러왔다.



아래글은 전경빈이라는 디자이너에 관한 토론에서 제기했던 부분이다.
참고로 전경빈씨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며 판단을 내린 바는 아니고,
이후 발표자에 의해 몇 가지 오해가 벗겨졌다.


-----------------
의상에 대해서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의상 '연출'이 어떤 조화로움-혹은 의도된 부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예술적인 감각이 요구된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추구하는 예술적인 행위라고 할 만 합니다.

예술적이라고 부를만큼 그것은 정치적이기도 합니다.
의도된 연출이던 무의식적인 의상은 자신의 정치성을 잘 드러내주는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여전히 아이비룩 선호한다는 것은
예술적 취향이 비슷하기 때문 만은 아닐 것입니다.
노티카를 입는 사람과 푸부를 입는 행위는 매우 다른 성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때는 개량한복이 유행하기도 했는데요. 그것은 반제-민족주의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총학생회 선거에서 후보들이 정장을 입고 유세를 하지만 이전에는 개량한복을 입는 팀도 있었습니다.
단체T에 적힌 슬로건 뿐아니라 스타일 자체가 하나의 정치성을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간단히 언급했는데요.

'우리 모두 이라크 여성이 되자'는 구호로 미국이나 유럽의 비무슬림 여성들이 차도르를 두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911 테러 이후에 급증한 무슬림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액션'이었습니다.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요.
차도르를 두름으로써 자신에게 폭력이 가해질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였습니다.

전경빈의 무지개 의상을 통해 성적 소수자에 대한 하나의 입장을 보여주는 것도
어떤 '시선과 폭력'을 감수하는 굉장히 정치적인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전경빈이라는 사람이 '진보적 기호'를 팔아먹는 사기꾼인지
'의상의 정치화'를 꿈꾸는 예술가인지 모르겠습니다.

쉽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가격이나 스타일은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는군요.
그저 포장된 상품으로 보인다고 할까요...

얼마전 매우 친한 선배가 '반달리스트'(반달리즘에서 차용)라는 남성복 브랜드를 런칭했는데요.

물론 문화파괴자라는 맥락에서 브랜드 名을 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상이 가진 산업적 성격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아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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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8 15:42

아래 내용은 계속된 토론 내용의 일부이다.
기술의 정치화라는 부분은 벤야민의 논의를 빌어온 것이기도 한데,

기술의 발전이 예술에 변화를 준다는 오래된 논점 뿐 아니라
기술의 민주화라는 입장에서 보다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맥락에서 사고해 보자는 것이다.


-----------------------
글쓴이에게 일종의 질문을 해 보구요. 제 나름의 생각을 적어봅니다.
논의의 필요성이 있는 것 같거든요.

1/ 올블로그와 네이버의 차이는 무엇인가?

더 정확하게 네이버 UCC와 올블로그의 포스팅의 차이는?
개인적으로는 2004년부터 태터툴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진보블로그를 사용할까 하다가 개인 도메인을 갖고 싶은 생각에 설치형 블로그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포탈의 서비스형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던 말던 그것은 별 상관이 없는 문제에요.
굳이 메타 블로그 사이트 같은 것을 포탈과 차별화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그런 쟁점 또한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형식-장치의 문제로 흐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포탈에서 ucc를 생산할 모든 플랫폼을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차별화된 목소리나 일종의 '지분'(컨텐츠 생산을 통해)을 확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포탈이 네트워크의 '모든 것'이 된 것은 DJ정권 당시 정부 주도의 IT산업 활성화 정책의 산물입니다.)

2/ 하드웨어는 아무 것도 아닌가?

컨텐츠는 그것을 재현해주는 미디어에 따라 매우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디지털 디바이스에 의해 제한되기도 하고 가능성이 넒어지기도 하죠.

저는 선생님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데요.
(엄밀하게는 하드웨어-기술 중심주의에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구요.)

그러나 하드웨어에 대한 발언이 컨텐츠-소프트라는 모호한 대상, 그에 대한 집착,
그에 대한 일종의 '막대 구부리기'라면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대 구부리기는 레닌이 즐겨 쓰던 표현인데요. 구부러진 막대를 똑 바로 펴기 위해서는 반대로 휘어질 만큼 힘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쓴 글에 전자책 리더를 사례로 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

그리고 이것은 약간 다른 쟁점을 제기할 수도 있는데요.

하드웨어 혹은 기술의 정치화라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벤야민의 '예술의 정치화', '정치의 예술화'라는 쟁점을 빌어 생각해 본 것입니다.

로봇이나 자동화시스템이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으로 작동할 것인지
인간에게 고된 노동을 덜어주는 역할을 할 것인지.

(모바일, 인터넷을 비롯한)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이 통제의 수단이 될 것인지
불필요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수단이 될 것인지는

이것은 이 기술-하드웨어를 어떻게 정치화하는가에 달려있다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정치화하되는 가에 따라 매우 상이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술은 거대 독점 자본에 의해 통제-발전되기 때문에 거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오히려 더욱 민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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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8 15:36

아래는 기술과 미디어에 관한 토론 과정의 일부


----------------------
코카콜라를 제치고 세계 브랜드가치 1위에 올랐던 구글이 우리나라에서는 20위권안에 진입조차 못하고 있습니다.(참고로 2001년까지 구글 한국어 검색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잘 안씁니다.)

이유는 간단한데요.
네이버, 다음, 야후, 엠파스의 검색결과보다 훨씬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단어 몇 개만 검색해보면 금새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는 구글이 최고의 검색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에 1위입니다.
이것은 어떤 방식에 차이 때문입니다.

크게 세 가지 문제 때문인데요.

1/ 웹페이지만을 검색결과로 보여준다.

우선 구글은 웹페이지만을 검색해서 보여줍니다.
네이버처럼 블로그, 카페, 뉴스, 사이트, 책본문, 웹페이지, 지역 따위를 한번에 보여주는 통합검색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웹컨텐츠는 거의 대부분 포탈의 서비스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포탈 외부에 방대한 DB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는 다른 셈이죠.
미국에서는 좋은 정보를 갖춘 웹문서를 빨리 찾아주면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포탈내부의 컨텐츠를 활용합니다.

구글은 검색해서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중요하고
반대로 우리나라의 포탈은 계속 머물러 돌아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2/ 자체 컨텐츠가 없다.

우리나라의 포탈은 자체 보유 DB활용에 배타적입니다.
예컨데 네이버지식인은 네이버에 가서 검색해봐야 하는 것인데요.
(이러한 배타성을 깨려는 시도를 제가 다니던 엠파스에서 했는데 그게 '열린검색'이라는 것입니다.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구글은 국내에 확보된 컨텐츠가 없구요.
주요 포탈을 인수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확보할 방법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구글도 컨텐츠 업체를 인수하며 확보하고 있습니다.)

3/ 튜닝을 안한다.

이것은 앞의 두 문제와 결합되는 것입니다.
생활검색이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날씨를 입력하면 구글은 날씨라는 단어와 가장 인접한 사이트를 찾아줍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포탈은 자체로 준비된 날씨 정보를 보여줍니다. 이미 예상가능한 키워드를 가장 선호하는 방식으로 보여줄 준비를 해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결과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한마디로 검색결과를 예상 키워드를 중심으로 미리 준비해 둔다는 것입니다.

앞의 3가지 문제를 요약하면 '사람'이 편집하는 문제인데요.
그래서 국내 검색엔진에서 영문 웹페이지를 검색하면 엉망으로 나옵니다.
튜닝이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문검색을 비교하면 구글의 기술력에 정말 놀랄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할 요인이 국내에서는 한계 요인이 되는거죠.
반면에 국내 포탈은 결국 기술력은 떨어지는데, 튜닝으로 극복하고 있는 것이죠.

전에 ***의 '** ****'에서 진행된 인터넷 검색찬스 PPL을 진행했는데요.
지금은 구글로 PPL업체가 바뀌었습니다.

당시에 웹페이지 검색만으로는 정답을 찾기가 힘들더군요.
지식, 뉴스 등의 컨텐츠를 검색 결과에 포함시켜야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매주 튜닝하느라 귀찮았습니다.

그런데 구글은 웹페이지만으로 퀴즈 참여자가 정답을 잘 찾더군요.

(검색의 역사에 대해 궁금하시면 search라는 책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검색으로 세상을 바꾼 구글 스토리'라고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ms가 구글을 두려워 하는 것은 os(운영체제)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얼마 후에 윈도우 같은 os가 불필요한 pc가 등장할 것 같습니다.

MS의 독점성은 윈도우에 기반하는데요. 물론 짐작이기는 하지만
구글은 열린 플랫폼을 지향하기 때문에 새로운 PC세상에서는 MS의 최대의 적이 되는 셈이죠.

미디어 플레이어, 포토샵, 워드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하지 않고 웹상에서 바로
그런 일들을 처리해주는 PC환경이 도래한다면 MS는 독점성을 잃고 말겠죠.

너무 길어지는 것 같네요. 이쯤하고...


하드웨어 이야기는 간단한데요.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전자책리더인데요.
기존의 디지털 디바이스로는 도저치 책 읽는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소니와 마쓰시다에서 일본어기반 리더를 발표했는데요. 텍스트 위주이고 흑백에 엉망입니다.

국내에 하이북리더가 있었는데 접었습니다.

국내 전자책 산업은 공공적인 것을 제외하면 북토피아라는 업체 하나로 집중되어있습니다.
이곳의 전자책 산업의 비전은 네그로폰테가 이야기한 영상, 음성, 텍스트 등의 다양한 매체의 통합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자책은 경우에 따라 MP3, 동영상, 이미지 등을 통합적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영어교재를 열어놓고 바로 듣기 실행이 가능한 형태입니다.

그런데 저는 산업으로서의 전자책은 책의 질감을 확보해주는 '디지털 디바이스'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실패할 것이라고 봅니다.

가격, 구매, 보관 등의 문제에서 우위에 있지만 책장 넘기는 기분은
절대 마련해주지 못하거든요.

외국 나가면서 노트북에 전자책을 여러권 담아가는 것 외에는 전혀 매력이 없죠.

그런데 수백권의 책을 한권 크기의 전자책 리더에 담아 '종이책'처럼 읽을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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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8 15:30

i-pod와 podcast에 관한 토론 내용의 일부



--------------

저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보다는 제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여기에 글을 쓰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어떤 사명감은 아니지만 기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이곳에 글을 남기어 논의를 더 이끌어주시거나
정리해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재미있는 주제였는데요.

미국의 대학생을 상징하는 아이콘 중에 대표적인 것이 스타벅스와 아이포드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냅스터 세대인데요. 당시 처음 접한 놀라움이란 대단했습니다.

얼마 후 냅스터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는 소리바다가 등장했습니다.
둘다 copyright라는 문제 때문에 부침을 거듭하다 결국 유료화를 선언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죠. 지금은 적자상태입니다.

저도 아이팟 나노를 사용하지만 i-tunes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냅스터와 비교하자면 '자율과 소통' vs '통제와 차단'이라는 등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업시간에 시간관계상 말씀은 못 드렸지만 우리나라에도
유료음원 서비스가 있습니다. 멜론, 도시락, 뮤직온, 소리바다가 그것이구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음제협 같은데서 뭔가 하는 것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포드캐스팅 얘기를 하자면...
발표자께서는 애플사와 관계된 어플리케이션 쪽의 일을 하셨기 때문에
그 쪽을 중심으로 다루신 것 같아요.

그밖에도 포드캐스팅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습니다.
broadcasting을 발음해보면 podcasting이 어디서 나온 말인지 금새 눈치채실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mp3p를 그냥 아이포드라고 합니다. 검색하다는 구글하다라고 하죠.)

그 출발은 개인들이 하는 일종의 라디오 방송입니다.
mp3로 녹음해서 자신의 블로그 같은 곳에 등록을 하는 것입니다.
(http://podcast.tistory.com/category/Podcast%20OnAir)
위 사이트에서 국내판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발생한 문화인데요.
사실 다운로드는 불편한 방법입니다.

편리한 스트리밍 서비스나 실시간 방송을 위한 장비를 갖추지 못한
아마추어들이 손쉽게 음성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pmp가 구현해주는 것이 발달한 관계로 동영상으로까지
확장된 것입니다.

그리고 rss피딩이라는 것이 있는데요.(요즘 블로그에는 rss기능이 다 있습니다.)
자신의 rss리더에 관심있게 듣던 포드캐스팅을 등록해두면 업데이트 소식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원하는 채널의 업데이트 소식만을 개인의 블로그에서 수신하게 되는 거죠.

참고로 요즘 미국에서 동영상 교류의 대세는 유튜브(http://www.youtube.com/)라는 곳입니다.
구글에서 16억달러에 인수해 화제가 되었죠. 여기도 재미난 것이 참 많습니다. 평점같은 것을 확인해 볼 수도 있구요.

그리고 사진을 편집해서 올리는 플리커(http://www.flickr.com/)라는 사이트도 있는 데요.
여기는 야후가 인수했습니다.

대충 감을 잡으셨겠지만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활성화시킨 이런 재치있는 사이트들은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거대 포탈 사업자에게 인수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포탈에서 저런 서비스들을 시작해 버리죠.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겠는데요.
포탈 중심의 인터넷 문화는 정부 주도의 디지털 컨텐츠 산업이 낳은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포탈에 다니던 시절 포드캐스팅을 눈여겨 본 것도 지식검색과 1인 미디어에 관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죠.

산업은 인간의 창조적 활동을 착취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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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8 15:25


이 글은 수업에서 진행되었던 squat에 대한 논의의 일부이다.


--------------
squat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 것 같은데요.
열림-닫힘의 문제의식에서 역시 어떤 기억들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 질문하기도 한건데요.

어쨌든 비용의 문제는 예술에서도 중요합니다.
예술이 사회적이라면 그 비용을 사회에 요구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간 마련에 드는 비용도 마찬가지겠죠.

점거에 관한 기억들

1/
99년에 모집단위 광역화 문제로 본관 '완전' 점거를 한적이 있는데요.
개교 이래 처음이라고 합니다.

물론 '총장실' 점거라는 상징적인 점거는 수 차례 있었지만
행정업무를 보는 모든 곳 까지 점거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총장실 점거가 매년 되풀이되었지요.

99년 본관 점거 때는 그곳을 잘 활용했습니다.
학회나 동아리 모임을 신청을 받아서 각 회의실을 사용하도록 했고
기본적인 학생 자치 활동을 상당부분 그곳으로 이전 시켰습니다.

선전물품 같은 것을 비치해두고 학생들 누구나 쓰고 본관에 포스터나 플랑을
붙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곳에 붙어있던 한 문구만큼 '이곳은 우리의 해방구'였습니다.

2/
68년에 NLF(National Liberation Front)의 깃발이 미대사관에서 한 시간 가량 휘날리는 모습이 사진을 타고 전해졌습니다.

베트콩들이 미제국주의의 상징인 미대사관을 점거하는 모습은 전세계에 충격이 주었죠.
물론 현실에서 '점거'한 자들은 한 시간 이후 모두 '검거'되어 살해당했습니다.

3/
68년 유럽의 봉기는 소르본느 대학의 낭떼르 분교 점거 사건에서 촉발되었습니다.
여학생 기숙사에 남학생이 들어가게 해달라는 요구 때문이라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당시의 혁명적인 요구를 희화화시키려는 헛소리일 뿐이고,

중심부국가의 고도성장의 모순이 폭발한 계기로서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점거 이후 학생들은 '노동자에게 대학의 문을 열었습니다.'

점거는 빼앗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 것을 다시 모두에게 돌려주려는 시도인 셈이죠.

4/
영국에서 산업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는 배경은 여러가지가 있을텐데요.
자원, 증기기관, 해상무역을 통한 부의 축적...
그 중에 하나가 풍부한 산업예비군, 즉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있는 빈민들이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이들은 '인클로저' 운동의 결과였습니다.
울타리를 쳐서 농민들을 내쫓고 양떼를 키운 것이죠.

5/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의 철폐를 이야기했지만 소유 일반을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생산수단의 공유를 기초로 한 개인적 소유(individual property)를 주장했죠.
세간의 오해처럼 모두 빼앗아 국가에 바치자는 헛소리를 한 것이 아니죠.

자본주의적인 부동산 소유가 어떤 절대적인 진리는 '절대' 아닙니다.

자본주의의 전유(appropriation)는 '배타성'을 전제로 하고 개인적인 소유를 오히려 부정한다고 보았기 때문이 이를 비판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저도 굉장히 어려워하는 부분인데요.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마르크스의 '자본'1권과 알튀세의 '자본을 읽다'의 소유권 부분을 참조하세요.)

6/
지식과 예술이 위대한 이유는 그것이 모두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개인 노트에 잠자고 있는 뛰어난 이론이 공개되고 다른 이론들과 접목되어 활용될 때 더 큰 가치를 지닐테고, 부유한 개인의 기도실에 걸려있던 르네상스의 그림들이 미술관에 전시될 때 보다 빛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인류 공동의 유산입니다.
백혈병 치료제가 한 제약회사만의 노력으로 탄생한 것은 아닐텐데요.

그 백혈병 치료제가 돈 많은 사람들만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 없는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전해줄 때 더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요?
(지적 재산권의 문제는 이런 것을 방해합니다.)

7/
발표자께서 '열림-닫힘'을 제시해 주셨는데요.
저는 열림의 문제의식에서 서술해 봤습니다.

가치는 공유될 때 더 커질 수 있는 것인데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공간일 수록 그 가치가 더욱 커집니다.

그에 대한 배타적 소유는 오히려 그것들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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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8 15:20

아래는 수업시간에 토론한 내용인데,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서
이곳 휴지통으로 가져왔다.

연달아 올릴 내용들은이전에 읽어 두었던 책과 사이트의 내용을
내 방식대로 정리한 것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크게 3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예술의 상업화라는 논점
2/ 예술의 비용 마련의 문제
3/ 권리로서의 예술의 문제

LV의 가방을 보면 디자인이 예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술의 상업화'가 아니라 산업이 그냥 예술을 차용한 것일 뿐이죠.
그건 예술의 상업화와는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

LVMH에 다니는 친구에게 들은 얘기인데요.(Dior나 LV는 이곳의 브랜드입니다.)
Dior나 LV의 경우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할인과 같은 마케팅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장인 정신이 아니라 그냥 브랜드 이미지 구축이라는 명품 산업의 논리일 뿐입니다.

1/
이것은 어찌보면 케케묵은 것이구요. 뒷북때리는 논점일 수 있습니다.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바 이미 상업화되었거나 아예 '산업'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습니다.
돈 되는 예술과 아닌 예술은 이미 많은 부분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술품의 작품성이 상품성을 인정받는다는 착각인데요.
실제로 산업화시키는 능력에 따라 결정납니다.

우스갯 소리를 하자면
아프리카나 남미의 고대 부족의 문양들을 거대 기업에서 로고로 상표 등록을 한다면
그 부족들은 자신의 유산들을 사용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삼족오'문양을 쓰려다가는 일본 축구협회에 거액의 합의금을 물어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한편 매년 사망한 자들이 수입을 집계해서 순위 공개를 하는데요.
올해는 코베인이 1위,  앤디 워홀이 6위를 차지 했습니다.
창작자들과는 무관하게 시스템에 의해 그들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예술을 상업화한다는 것은 그 가치를 '숫자'로 환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예술은 산업의 논리로 재편이 된 상황이죠.

그래서 뒷북 때리는 논점이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질문이 뒤집어져야 합니다.

"예술을 무료화 해야 하나요?"

2/
결국 고민은 김지섭씨가 오셨던 날로 돌아갑니다.
'저는 예술가는 어떻게 돈을 마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드렸는데,
본인 표현으로 '무능한 답변'이라는 것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결국 제 생각과 비슷한 점을 발견했는데요.
일종의 '사기'가 필요하다는 것인데요.

디에고 리베라나 백남준 선생 또한 자본가들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록펠러는 스탠다드 오일이라는 추악한 자본을 상징합니다.)

수업시간에 들었듯이 에이젠슈타인 등도 정부로부터 비용을 조달했습니다.
물론 예술가들을 한줄로 세워서 동일한 방식으로 보조금을 나눠줄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예술가의 비용 마련에 있어서 다양한 방법을 마련해야 할텐데요.
앞선 스캇 발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작업의 공간, 전시의 공간 등에 대해서도 정부로부터 보다 커다란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기업으로부터 예술 비용 마련을 위한 세금이라도 더 걷어야 겠죠.

3/
관련 내용중에 이미 쓴 글이 있어서 긁었습니다.
아래는 squat 점거 부분에 쓴 글인데요.
관련 부분을 가져왔습니다.

관련 내용은 '점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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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1 19:48
2년전에 쓴글을 읽으니 낯이 간지럽다. 문체가 왜이러나 싶기도하고... 역시 휴지통으로 보내는 글.


아래에서 언급한 학회에 대한 내리 사랑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작성일 2003-05-19 오전 3:53:36
프리챌 커뮤니티에 있던 글

---------------
1/ '애도' 작업

오늘 오씨엔에서 '박하사탕'을 하고 있더군요.

얼마 전 과외하는 애들하고 같이 본 '살인의 추억'이 떠오르더이다.
(고1아이는 재미없어하고 고3짜리는 정말 재밌어하더군요. 사실 왜 재미있어 했는지 이해가 잘 안가더군요)

영화광인 형이 게거품을 물고 칭찬하길래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생각보다 재미는 없더군요. 차라리 지금 영화를 떠올려 보면 '무거운' 느낌이 전부라고 할까요...

실은 씨지브이의 편한 의자에 앉아 '수마'와 싸워가며 보았더랬죠.

이창동이 '박하사탕'을 통해 80년대에 대한 '애도'작업을 했듯이
봉준호도 '살인의 추억'으로 80년대에 대한 '애도'의 작업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품행제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향수'라기 보다는 시대의 아픔에 대한 의도적인 '외면'으로 밖에 보이지 않더군요.)

박하사탕의 설경구와 마찬가지로 경찰을 하다 '사장님'이 된 송강호는 옛 추억을 더듬어 첫 '희생자-여인'이 있던 작은 굴을 찾아갔더랬죠.

그 마지막 장면에 꼬마가 전에 찾아온 이가 아주 평범한 얼굴이었다고 이야기할 때 '범인'이 아니라 김상경이 떠올랐습니다. '김상경'이야 찾아보면 쉽게 만날텐데, 왜 그리 정색을 하는지 이해가 안되더이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 송강호가 '범인'을 묻는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80년대 그리고 살인사건'을 잊혀진 옛 '기억'으로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김상경과 일하던 옛 시절을 떠올리는 것으로 받아들였으니까요.

그러나 봉준호는 80년대를 치유하지 못했나 봅니다. 따라서 애도작업이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국 잡지 못한 '범인'이 이 세상에서 '평범하게' '버젓이' 살아있을테니까요. 물론 그가 치유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점에서는 결국 '나 돌아갈래'를 외치는 설경구도 마찬가지겠지요.

괜시리 90년대 이후에 대한 나름의 '애도'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뭐 거창한게 있겠냐만은 90년대 중반 이후의 학생운동에 대한 '역사화' 작업과 더불어 '학생사회'와 제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랄까 뭐 이런거죠...

뭐 과거를 팔아먹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80년대는 '니들이 시대의 아픔을 알기나 하겠냐'는 무거운 짐이겠지만,(소위 80년대 당시 운동했던 전향한 글쟁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부아가 치밀기도 합니다만은) 저에게는 '前史'일 뿐이니까요.

옛것이 사라지고 새것이 오지않아 혼란해하고 있는 바로 '위기의 시대'로서 90년대 이후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게 반쯤은 시작되었구나 생각한게, 작년부터 이어져온 촛불시위라고 할까요. 결국 항상 고민의 핵심에 놓일 수밖에 없는 '대중'의 역동성-양가성이겠죠.



2/ 유별난 학회

물론 거대한 담론에 의해 무디어졌다고 평가받는 80년대가 아니라 모든 것에 '민감'했던 90년대 이후 돌이켜 본다는 것이 쉽지 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실은 저는 프락시스가 많이 '투박'하다고 생각하는데 포스트 담론을 경계했던 영향이 아닐까합니다.)

프락시스의 방향성 모색도 어느 정도 이러한 애도작업이 뒷받침을 해줘야 할 것 같기는 합니다.
90년대 운동의 주류적 흐름을 고스란히 담지(긍정성 및 부정성을 포함하여)하고 있는 '학회'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위기의 시대'를 넘어선 새로운 운동이 곧바로 출현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프락시스가 가장 선두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봅니다. 어디를 뒤져봐도 이만한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중운동의 쟁점들을 선도적으로 제기하며, 대중운동들을 일구어 가는데 적지않은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실은 대중운동으로 잘 풀어내지 못하고 있지만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쟁점들을 정확하게 읽고 있는 학회는 프락시스외에는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프락시스가 펼쳐왔던 지난 활동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없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정당한 평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극단적인 편향(해체주의, 교조주의)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운동의 내용뿐 아니라 다양한 실천의 양태들도 개발되어야 겠죠. (특히 학회와 같은 곳에서 모든 회원들이 동일한 실천을 할 수는 없겠죠. 견해차도 있을 것이구요)

지금 프락시스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러쿵 할말이 없습니다. 저는 온전히 앞으로 프락시스를 이끌어갈 '후배'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아마 저의 몫은 '애도'작업을 통해 지난 활동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저는 적당히 하면 적당한 결과를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결과를 얻으려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죠.

프락시스가 '유별난 학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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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8 20:38
예전에 학회 게시판에 써두었던 글 퍼왔다.(역시 휴지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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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제와 수다

광혜원 개원을 기념하자는 것도, 매년 빈곤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내는 ‘기조’도 대동제를 의미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주제와는 상관없는 ‘자리’ 그러나 의미 있는 ‘자리’이다. 특히 오랜만에 여럿이 나누는 수다는 대동제로 발걸음을 향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유쾌한 수다는 명확한 목적이 있지 아니하다. 그 ‘자리’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에 자유롭다. 서울에서 갑자기 라틴아메리카로 떠났다가 일본을 거쳐 대구로 돌아오기도 한다. 보아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떠들다가 전쟁, 종교 이야기로 목청을 높여대기도 한다. 우리들은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미래를 점쳐보기도 한다. 말 그대로 ‘그’ 수다는 제약 없는 그리고 거침없는 여행이 된다. 뚜렷한 결론이 있는 것도 얻어낸 것이 무엇인지 모를지라도 행복하다.

물론 그 수다가 단조롭지만은 않다. ‘앵무’와 ‘기매’의 만남처럼 물과 기름의 만남이라면 티격태격 고성이 오고 가기도 한다. 그래도 만남의 깊이가 사소한 언쟁을 덮고도 남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제는 오랜만에 만난 그/녀들이 할말이 많았나 보다. 의아하게도 가장 뜨거웠던 화제는 단연 ‘보아’였다. 그녀의 팬클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 녀석 외에도 저마다의 입장을 가지고 있던 사안, 다른 수다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모습이지만 ‘보아’를 가지고도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그들의 상상력 탓이 아닐까 한다.

다음으로는 라틴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발의자가 고리타분한(?) 문학이야기를 일상에서 꺼내기가 쉽지 않았던 터라 달짝지근하기 그지없는 수다였던 것 같다. 마침 라틴아메리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주리가 있어 라틴문학을 좀 더 만나고 싶은 마음에 불을 댕겼다.

과거를 공유했기 때문에 미래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를 공유했기 때문에 ‘오늘의 수다’는 유쾌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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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1 10:19
휴지통에 적합할 글.
2001년에 기여입학제 관련 대책위 꾸렸을 때, 자료집과 자보에 나갔던 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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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 입학제는 개인의 교육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 현실성 논리의 일반적 적용

"기여입학제 하면 연세가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발전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 아닌가? 바로 2년 전 광역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려던 학교당국에서 하던 말을 떠올려 보자. "광역화하면 연세가 국제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발전한다." 무리한 비유인가? 물론 90%를 훨씬 넘는 반대가 나타난 연세인 총투표, 심지어는 광역화를 반대하는 문과대 교수들의 성명서에서도 드러났듯이 많은 연세 구성원들은 취지만을 강변한 채 학제개편을 강행하는 학교당국의 말을 믿지 않았다. 연세의 발전을 위해서는 잠시 학교에 머무는(?) 무지한 연세인들의 의사가 철저히 묻힐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학교 당국은 또 다른 획기적인 아이템을 무기로 연세를 재편하고자 한다.



사립학교법 개정



"국회 계류중인 사립학교 관련법 개정안이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는 과연 통과될 수 있을지가 주목되고 있다...
특히 전교조 등 40여개 단체로 구성된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법개정에 소극적인 한나라당에 항의하는 삭발시위를 벌이는 등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는 것도 국회 논의에 일정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민련의 반대, 한나라당의 소극적인 태도 등이 크게 바뀌지 않은 상태여서 이번 회기에도 통과가 어렵지 않느냐는 전망 역시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개정안은 이처럼 사학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회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등 전교조 등이 요구한 수준을 상당부분 충족시키고 있다... 이렇게 사학관련법 개정안이 전면 개정을 방불케 하는 방향으로 나오게 된 것은 전국적으로 사학 관련 비리와 분규가 끊이지 않아 대책이 시급하다는 합의가 이뤄진 때문이다. (생략)" - 한겨례 6월 9일자 2면



등록금 인상을 둘러싼 갈등, 독단적인 대학운영 혹은 부패한 사학재단의 문제로 인해 최근 몇 년 간 3-4월은 학내분규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이는 3-4월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수에게 모든 권력이 독점된 사립학교의 불합리한 운영방식에 대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각계의 요구를 담은 것이 사립학교법 개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강력하게 저지하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보수 기득권 세력이고, 사학재단의 소수 독점세력들이다. 시대를 역행하는 이들의 행태는 가관이다. 특히 연세대학교 당국은 국회의원들을 로비해 법개정을 저지하려고 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다. 또한 이들은 현행법으로는 불가능한 기여우대제를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법마저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과연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99년에는 '60-70만원에 달하는 기성회비 강제 징수'가 불법이라는 통보를 받자 편법으로 등록금에 합산시킨 이들 아닌가?


공교육 - '사회적 연세'

현재의 대학의 모습을 직시할 필요가 있겠다. 공교육이라는 개념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인간의 보편적 권리 중에 핵심을 이루는 하나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재정지원이나 국가의 교육정책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거두절미하고 무상에 가까운 교육을 실시하는 유럽은 차치하고라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교육기관에는 세제혜택이나 교육재정을 통한 지원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교육기관운영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들(토지세, 전기세, 수도세, 전화세 등) 또한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재정은 대학교육에 지원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는 사립학교 중에 최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세는 연세 구성원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위와 같은 공교육의 맥락에서 본다면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은 개인의 사회에서의 활동을 담보해내는 장치이다. 이러했을 때 '사회적 연세'의 개념을 적용시킬 수 있겠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국가나 사회시민단체가 연세의 기여우대제 발표에 촉각을 세우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현실성의 논리를 일관되게 적용하라!
현재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드러난 연세에서의 60%를 상회하는 기여우대제 찬성 입장을 바라보며 효율성과 현실성 논리에 일관된 적용을 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그러할 때 공적영역으로서의 대학의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이는 연세에 대한 사회적·재정적 지원을 중단하할 것을 호소하는 것과 같다. 이는 비용의 개인전가로 이어진다.
도덕성/현실성의 부당 전제에 근거한 현재적 논점을 바라보며 잠복해있던 모순된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 바로 '옳은 것'과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의 관념적 대립이 그것이다. '대학 위계서열화를 통한 소수 대학에 대한 편중지원', '학문간 위계서열화를 통한 실용학문 위주의 지원', '기부금을 통한 입학증 판매' 등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듯하지만 현실성의 논리에 이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진정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러면 금전적 기여를 통한 대학 재정의 확충을 '사회적 연세'에 적용시켜보자. 20억 이상의 기부를 통한 입학생이 80여명까지 가능함을 감안할 때 1600여 억원까지 가능하다. 그 이상의 금액을 지불하는 사람도 있을테니, 적어도 연세인의 일년 등록금을 내고도 600여 억원이 남는다는 논리이다. 이 정도의 돈에 당연히 눈이 돌아갈 것이다. 몇몇의 기여 입학을 통해 이러한 재정 확충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효율적인 장사인가?
투명한 자금운용을 전제로 기부금이 연세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는 연세인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두다 동일한 논점으로 배치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 주장의 핵심적인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 보자. 첫째 대학의 발전은 재정에 달려있다. 둘째 기부금은 연세를 위해 쓰여야 한다. 셋째 연세의 발전은 나의 발전과 동일시된다.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지식을 생산하거나 교육하는 데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는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국가, 개인, 산학협동을 통한 기업의 지원 등으로 공동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년간의 계속되는 등록금 인상에도 드러났듯이 현재는 개인의 부담을 더욱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식은 그 자체로 사회적인 것이다. 학문 영역의 생산은 물론 교육 또한 사회적 활동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며, 실제로 생산된 지식은 교육받은 사람들의 사회진출, 지식을 통한 사회발전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그에 소요되는 비용은 사회적 차원에서 책임을 져야한다. 기부금을 통한 입학이라는 것은 이를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다음으로 공공성 탈각으로 이어지는 기부금 입학제를 사회 전체로 확장시켜 사고해보자. 그간 교육의 공적 성격으로 인해 존재했던 사회적·재정적 지원은 모두 사회로 되돌려져야할 것이다. 효율성과 현실성의 논리를 일관되게 적용했을 때 그리고 대학의 공적 성격을 포기했을 때 그것들은 모두 반납되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사회적 활동을 통해 축적된 돈인 기부금을 연세만을 위해 쓰고, 재정지원과 세제혜택도 받겠다는 것은 도둑놈의 심보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대학이 위계서열화되어 있는 상황과 신자유주의 대학구조조정으로 인한 개인 부담이 확대되고 있는 현실의 상황에서 소수의 상위권 대학을 제외하고는 기부금으로 대학재정을 충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대부분의 대학들은 재정파탄으로 고등교육의 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이는 소수 대학의 입학자를 제외하고는 교육에 엄청난 비용을 개인이 물게된다는 것이다. 또한 보다 상위권에 머물기 위한 대학간 불필요한 과당경쟁과 사회적 비용은 고등교육의 왜곡을 심화시킬 것이 뻔하다.
정리하자면 교육의 공적 성격을 사상한 채 연세의 발전이라는 것은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이는 교육의 국가 책임을 포기하고, 되는 데만 지원하겠다는 지난 몇 년간의 교육 구조조정의 예를 통해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기부금을 통해 연세와 자신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은 결국 대학과 교육의 사회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는 자기 모순일 수밖에 없다.


교육재정 확충. 머지 않은 길


이렇게 기부금을 통한 입학제도를 반대하는 것이 현재 사립대학의 재정 취약을 외면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옳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으로 교육재정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97년 말 경제위기 이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다고 한다. 이는 지난 몇 년간의 구조조정과 다른 맥락의 그 무엇이 아니다. 경제 위기 이후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며 진행된 구조조정은 오히려 기업이나 자본가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역행하고 있다.
실제로 학문과 교육을 통해 생산된 지식은 사회적 생산을 위해 사용된다. 이에 대한 비용은 당연히 사회적 책임으로 해결되어야 하며, 대학교육 뿐만 아니라 중등교육 과정에도 일관되게 투여되어야한다.
국가 교육재정의 확충을 위해서는 직접누진세의 강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는 교육의 공적 성격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며, 개개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최대한 확장시키는 과정일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 가려 한국사회 고등교육의 구조를 왜곡하는 기여입학제에 대한 심각한 고려를 제안하는 바이다.
기부금 입학제는 개인의 교육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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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쓰고 학회 게시판에 씨부린 글...
내가 원래 이런 감정 섞인 글은 잘쓰지 않는데 신기해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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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입학제와 관련된 논의를 바라보며...

흥분을 금할 수 없다. 본디 차분히 논의를 전개하는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대학/학문간 위계서열화의 공고화 보다 상위권에 있는 대학에 많은 혜택이 가겠지, 실용학문지원에 비중이 실리겠지...

뭐 이 정도는 나의 장학금이 많아지는 것을 위해 눈감아 줄 수 있나?

속으로는 그러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적극적인 발언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

하위권 대학을 간 고교친구들을 생각해보라...

떳떳이 말할 수 있겠는가?

되는데는 기부금 입학으로 교육환경 개선하자고, 아마 왕후장상은 씨가 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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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31 10:33
휴지통은 내가 예전에 쓴 글을 부끄럽더라도 퍼다 놓을 요량으로 만들었다. 마침 무한 서핑 중에 대학시절 몸담았던 학회의 커뮤니티를 뒤지다가 치열했던 논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이게 웬걸. 내가 봐도 말도 안되는 글. 논점 일탈에 싸가지 없는 어투를 남발했더라.

"참으로 안따까운 생각이 든다. 나는 한 문장-한 문장 비판을 하며 따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그러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몇 가지 주장들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의 주장은 반知性주의와 조직형식주의로 가득차 현실에 대한 인식과 그에 기반한 전망을 만들어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지난 글에서 앞선 주장들을 했다. 그러나 **의 반박글은 전혀 자신의 주장이 어떠한 맥락에 위치하는 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나의 주장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약간의 부연설명을 더해 다시 읽기 쉽게 요약해봤다. 한번 진지하게 재독해를 요구하는 바이다."


위는 2002년에 지방자치제와 기층학생회 관련한 논쟁의 시작과 끝부분이다. 같은 말을 해도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치열함에 날이 서 있던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나의 말하기 방식이 굉장히 폭력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당시 논쟁의 대상이었던 후배는 차분한 어투를 유지했다. 날 서있던 글들을 찾으려 했으나 부끄러움만 생긴 서핑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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